문학회 원고 - 백양 문학회
아아, 훈민정음(訓民正音)
오세영
언어는 원래 신령스러워
언어가 아니고선 신(神)을 부를 수 없고,
언어가 아니고선 영원(永遠)을 알 수 없고,
언어가 아니고선
생명을 감동시킬 수 없나니
태초에 이 세상도
말씀으로 지으심을 입었다 하나니라.
그러나 이 땅, 그 수많은 종족의 수많은
언어 가운데서 과연
그 어떤 것이 신(神)의 부름을 입었을 손가.
마땅히 그는 한국어일지니
동방에서
이 세상 최초로 뜨는 해와 지는 해
그 음양(陰陽)의 도가 한가지로 어울렸기 때문이니라.
아, 한국어
그대가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되었고
그대가 땅을 부르면 땅이,
인간을 부르면 인간이 되었도다.
그래서 어여쁜 그 후손들은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이치를 터득해
•, ㅡ, ㅣ 세 글자로 모음 11자를 만들었고
천지조화 오행운수(五行運數) 그 성정(性情)을 깨우쳐
아(牙), 설(舌), 순(脣), 치(齒), 후(喉)
5종의 자음 17자를 만들었나니
이 세상 어느 글자가 있어
이처럼 신(神)과 내통할 수 있으리.
어질고 밝으신 대왕 세종(世宗)께서는
당신이 지으신 정음(正音) 28자로
개 짖는 소리, 천둥소리, 심지어는 귀신이 우는 울음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좌우상하(左右上下)를 마음대로 배열하여
천지간 막힘이 없고
자모를 결합시켜 매 음절 하나하나로
우주를 만드는
아아, 우리의 훈민정음.
속인들은 이를 가리켜
어느 글자보다도 더 과학적이라고 하나
어찌 그것이 과학에만 머무를 손가.
그대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되고
땅을 부르면 땅이,
인간을 부르면 인간이 되는
아아, 신령스러운 우리의
한국어.
우리의 훈민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