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 원고 - 동인지
별을 그리다
손미헌
혜화동로터리 엘빈을 찾았습니다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하자
진한 향기에 노시인의 음성이 실려 옵니다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가다듬고 나아가십시오
시의 밭이 시들까
어제의 하늘이 다시 펼쳐질까
봄꽃이 흔들릴 때마다
온 마음으로 가슴 읊조리던
동해안 시인 후백(后白)
말도 꽃처럼 고와라 했지요
시래깃국을 즐겨 찾으시던 구의동 강변에는
시의 거리에서 울컥 쏟아져 나온
5월 장미가 한창이라는데
멀리 별이 된 당신
그루터기에 앉아서도
늘
한 그루 울창한 회화나무였던
그 그늘 아래
시꽃의 향기가 물씬 깃을 치고 날아오릅니다
공원 산책
손미헌
층층이 높아만 가는 아파트
벽을 하나씩 헤쳐나가면
공원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자그마한 기와지붕의 정자가 보인다
있으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갈래진 길 망설임도 없이
물기 빠진 냇가에 초연히 앉아들거나
축구장 트랙에 뛰어들어 종종거림 치거나
실 꼬리에 묶여가듯
낮은 등산로를 따라 멀어져간다
그래 아무도 없는
반송정, 정자
직선과 곡선의 공간 속으로 살며시 안겨드는데
잇따라 멈칫 돌아서는 기척에
한 뼘 자리 시선 뜨겁고
다가서지 않아 몰랐던
햇살 모여들어 첨벙거리던 자갈밭
한걸음 어린학교 담장에 핀 모듬꽃들
낮은 동산의 무성한 밤송이들이
후드득
벽이 없는 것처럼
스치듯 한 걸음 물러나 갈래길에 서자
청설모 한 마리 쪼르르 공원을 가르며 거리낌이 없다
무화과
손미헌
꽃이 꽃을 물고 안으로
안으로 숨어들었다
바람의 이랑 사이로 파고들어
알지 못한 꽃
담장 안 틈을 벌려
빤히 쳐다보던 그 계집아이
두터웠던 담장의 뚜렷한 경계를
그날의 골목은 인정스레 받아만 들였다
그땐 왜 몰랐을까
툭 터져버린 울음을
무화과 불그스레한 속내를
이제서야 들여다보는 까닭을